신석기시대라는 용어의 의미
대략 기원전 1만 년에서 5천 년에 이르기까지 장소에 따라 매우 다르기는 하지만 중석기 시대가 뒤를 이었다. 이 시기는 일대 전환기였다. 사람들은 점차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조개와 먹을 수 있는 풀 등 새로운 식량원을 찾아냈으며 바야흐로 선세계대부분의 지역에서 빙하도 사라졌다. 중석기 시대는 신석기시대로이어 졌다. 신석기시대라는 이름은 돌로 된 무기와 도구를 이제는 과거처럼 떼어내거나 깨뜨려 시대라는 이름은 돌로 된 무기와 도구를 이제는 과거처럼 떼어내거나 깨뜨려서 만들지 않고 갈고 윤을 내어 만든 데서 유래한 것이다. 신석기 문화의 담당자들은 아시아로부터 아프리카와 남부 유럽으로 밀려들어온 새롭고 다양한 현생 인류들이었다. 그들이 그 후 멸종하 거 모조리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들은 오늘날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직계 조상으로 간주되 어마땅하다.
신석기시대의 다양한 연대
신석기 시대의 정확한 연대를 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지역에 따라 제각기 전혀 다른 과정을 밟아 신석기시대의 발전 단계를 거쳤기 때문이다. 최근에 요르단 강 서안에서 있었던 흥미로운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 그곳에 기원전 7500년경에 최초의 신석기시대 정착지가 있었음이 확실시되고 있다. 원숙한신석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기원전 5000년경에 존재했지만, 유럽에서는 신석기 문화가 기원전 3000년경까지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신석기시대가 시작한 연대 못지않게 끝난 연대 또한 다양하다 신석기시대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500년경에 최초의 문자 사용 문명이 등장하면서 종말을 고했지만 크레타 섬을 제외한 유럽의 어느 지역에서도 기원전 2000년 이전에는 끝나지 않았고 북유럽에서는 그보다도 훨씬 나중까지 지속되었다. 지구상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신석기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태평양의 일부 섬들 북아메리카의 북극 지역 브라질의 밀림 등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탐험가와 선교사들로부터 획득한 몇몇 관습들을 제외하면 아직도 신석기 문화의 단계에 머물러있다.
신석기 혁명
신석기 시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당시까지의 세계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였다. 물질적 진보의 수준은 신기원을 이루었다. 신석기시대의 인간은 그들의 선조보다 훨씬 훌륭하게 환경을 지배했다. 그들은 기후 조건이 변한다거나 식량공급이 일부 중단되었다고 해서 쉽사리 멸종되지 않았다. 이러한 결정적인 이점은 무엇보다도 농업의 발전과 가축의 사육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신석기 이전의 모든 사람이 단순한 식량 채집자였다면 더욱 안정된 식량을 공급받았으며 때로는 잉여 식량까지 얻기도 했다. 농업의 발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로서 정착을 촉진시켰을 뿐 아니라 인구 증가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것들은 거대한 사회 경제적 혁명의 요인들이었고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신석기 문화의 광범한 확산
그리고 이 새로운 문화의 중요성은 또 그것이 세계 전체로 확산된 최초의 문화였다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몇몇 초기의 문화들 특히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문화도 제법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지만 그것들은 주로 구세계의 접근하기 쉬운 중심 지역들로만 국한 되었다. 그러나 신석기 문화는 지구상의 주거가 가능한 모든 지역 즉 극지대의 불모지에서 열대 밀림에까지 파급되었다. 신석기인들은 여러 발상지들로부터 동반구와 서반구의 모든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육로나 수로를 통해 엄청나게 먼 거리를 이동했으며 마침내 거리가 얼마가 되건 간에 대양의 모든 주요한 섬들을 차지했다.
새로운 도구와 기술
원격지로의 이주만이 신석기인의 업적은 아니었다. 신석기인들은 뜨기잴과 직조 기술도 발달시켰다. 그들은 도기를 최초로 만들었고 마찰을 이용해 불을 피우는 방법도 알아냈다. 또 나무와 볕에 말린 진흙으로 집을 지었다. 신석기시대말기에그들은 금속을 어떻게 이용하는 지도 알게 되었고 구리와 금으로 만든 몇몇 도 구를 사용하기도 했다. 금속을 용해하고 정련하는 기술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금속의 사용은 순수한 금속 덩어리 형태로 발견되곤 했던 전성이 좋은 금속들로 국한되었다.
가축의 사유게
그러나 신석기 문화의 진정한 토대는 가축의 사육과 농업의 발전이었다. 가축의 사육과 농업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무엇보다도 정착 생활이 가능해졌고 촌락 및 사회 제도의 성장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가축화된 최초의 동물은 대체로 개였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이는 개가 동물의 뼈와 고기 부스러기를 얻기 위해 사냥꾼의 움막주위에서 줄곧 서성댔으리라는 추정에 근거한 것이다. 결국 개를 사냥에 이용할 수 있거나 아니면 움막을 지키는데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개를 가축화하는 데 성공한 이후로 신석기인들은 당연히 다른 동물들 특히 식량으로 이용할 동물들에게로도 관심을 돌렸을 것이다. 신석기시대가 끝나기 전에 최소한 다섯 가지 동물-소, 개, 염소, 양, 돼지-들이 가축으로 사육되었다.
농업의 시작
농업이 시작된 정확한 시점이 언제였는지에 관해서는 결론이 내려진 적이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오늘날의 곡물들과 유사한 잡초들이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종의 소맥들이 근동지방과 남부 러시아에서 지금도 야생의 형태로 자라고 있다. 보리의 야생 조상은 북아프리카근동, 중앙아시아에서 자라는 것으로 보고 되었다. 이러한 곡물들이 신석기시대에 경도인 최초의 곡물일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만이 경작된 것은 아니다. 기장 채소 그리고 수많은 과일들 역시 경작되었다. 동반구에서는 직물용 섬유를 얻기 위해 아마가 경작되었고 몇몇 지방에서는 아편을 얻기 위해 양귀비 재배가 이미 시작되었다. 서반구에서는 곡물이라곤 옥수수뿐이었다. 그러나 아메리카 인디언은 담배, 콩, 호박, 토마토, 감자 같은 그 밖의 여러 작물들을 경작했다.
제도의 본질
신석기 시대의 정착 생활이 가져다준 가장 중요한 결과는 제도의 발전이었다. 제도는 어떤 집단의 필요에 부응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교적 영속적으로 조직된 집단의 믿음과 행동의 결합체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통상 관습과 전통, 규칙과 기준, 그리고 건물, 처벌 장치, 통친, 교육시설과 같은 물리적 범위를 포함한다. 은 사회적 존재인 까닭에 이들 중 몇몇 요소들은 지극히 오래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형태를 갖춘 제도들이 등장한 것은 신석기시대에 이르러서라고 생각된다.
가족
인간의 국제도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중의 하나가 가족이다. 사회학자들은 가족이 어떻게 돼 정의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족이란 자녀 양육, 노동의 분화, 재산의 획득과 양도, 신앙과 관습의 유지 및 전달이라는 목적에 봉사하는과 그 자손들로 이루어진 다소 지속적인 단위를 의미했다. 가족은 예나 지금이나 그 성격상 전적으로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제도들처럼 가족도 오랜 기간에 걸쳐 변화를 거듭한 관습들을 통해 건전했는데 그 관습들은 가족에게 다양한 기능과 형태를 부여했다. 구석기시대에도 물론 원시적 형태의 가족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매우 불안정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족이 분명히 등장했으며, 그것은 지역에 따라 한 명 또는 더 많은 수의 부인을 거느린 남성 가장에 의해 지배되었던 것으로 뵌다.
원시 종교:의식과 예식
두 번째 제도인 종교는 신석기 시대이전에 알려졌으나 신석기시대 사람들에 의해 더욱 복잡한 형태로 발전했다. 종교는 지극히 다양한 것이 어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종교라는 제도의 기본특성에 대한 정확한 정의로서 다음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종교는 어디에서나 우리들 외부에 있는 힘, 즉 우리가 영적 또는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힘에 대한 이런저런 형태의 의존감을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의 인류학자들은 초기의 종교가 신앙의 문제라기보다 의식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이 맨 먼저 나타났고 그런 다음에야 신화, 교리, 신학 등이 합리화되었다. 원시인들은 일반적으로 자연에 의존했다. 즉 계절의 규칙적인 순환, 제때에 내리는 비, 식물의 성장과 동물의 번식등에 의존했던 것이다. 그들은 희생제와 의식을 행하지 않으면 이 같은 자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에서 그들은 비가 내리는 모습을 흉내 내어 곡물알갱이 위에 물을 흩뿌리는 기우제를 발전시키켰다. 촌락 구성원 전부 또는 심지어 부족 전체가 동물의 가죽을 걸치고 그들이 식량으로 삼았던 몇몇 동물들의 그것들의 번식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국가의 정의
신석기 시대 사람듈이 발전시킨 또 다른 위대한 제도는 국가였다. 국가란 특정한 영토를 점유하고 외부의 지배권으로 독립된 권위를 갖춘 정부를 지닌 사회 조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국가의 본질은 법을 만들고 관리하기 위한 권력 그리고 그 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처벌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권력이다. 문자 사용 이전의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위기가 닥친 시기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국가가 신석기시대의 후기에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농업이 국가발달에 미친 영향
신석기 시대에 국가가 발전하게 된 이유로는 농업의 발전을 들 수 있다. 많은 인구가 한정된 비옥한 땅에서 집약적인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나일 계곡과 같은 지역에서는 구도의 사회 조직이 반드시 필요했다. 높은 생활 수준, 부의 불평등한 분배, 광범위한 개인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는 사회에서는 구래의 관습으로서 권리와 의무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었다. 사회 통제를 위한 새로운 방법들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고의 권위를 지닌 정부를 세워 그것에 복종케 하는 것, 다시 말해서 국가를 건설하는 것 이외의 방법으로는 달성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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