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정의
기원전 3500년경에 최초의 문명이 신석기 문화로부터 출현했다. 문명이란 인류의 역사 발전에서 문자가 상당한 정도로 사용되고 예술과 과학에서 얼마간 진보가 이룩된 단계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한 사회의 질서 안전 효율성의 문제들을 적어도 일부나마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 사회 경제 제도들이 발전한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문명을 등장시키는데 기여한 요인들은 무엇인가? 그 문명은 어떤 요인들에 의해 성장하였는가? 왜 몇몇 문명들은 다른 문명보 다더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룩하였는가? 이런 문제들은 역사가와 사회 과학자들의 주된 과제 중의 하나이다. 어떤 학자들은 지리적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경제 자원 식량 공급니다. 기존 문명과의 접촉등을 주요 원인으로 강조한다. 다양한 원인들이 인정되고 있지만 많은 역사가들은 그중에서 한 가지 요인을 특히 강조한다.
지리학적 이론들:기후이론
고급 문화의 등장 요인에 관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은 아마도 지리학적 이론일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론은 기후 가설이다. 기후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몽테스키외 같은 철학자에 의해 이미 제시된 바 있지 만다. 그 이론을 가장 설득력 있게 개진한 사람은 미국의 지리학자 엘스위스 헌팅턴이었다. 헌팅턴은 다른 요인들의 중요성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기후의 자극이라는 영향 없이는 고대 국가든 근대 국가든 어느 국가도 최고의 문화적 수준에 오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균 기온이 섭씨 3도에서 섭씨 18도 사이에 머무는 것이 바람직한 기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온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습도 또한 중요한데 평균 약 75%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날씨도 항상 일정해서는 안된다. 태풍이 빈번히 그리고 격렬하게 발생하여 대기를 일거에 정화시켜야 하며 또한 갑작스러운 기온의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러한 대기 정화와 온도 변화는 인간의 원기를 북돋우고 활력을 붙어 넣는데 필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후 이론을 옹호하는 증거
기후 가설을 지지하는 사례는 많이 있다. 지구 상의 일부 지역들은 현재의 대기 조건하에서 결코 우수한 문화를 산출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지역들은 너무 덥거나 너무 습하거나 너무 춥거나 또는 너무 건조하다. 극지방 거대한 사막 지대 그리고 인도 및 중앙아메리카와 브라질의 우림 지역이 여기에 속한다 그렇지만 이들 지역 중 일부가 오늘날과 같은 불리한 기후 조건 아래 있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증거도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황폐한 지역들이 과거에는 한때 지금 보다 한층 나은 기후 조건 아래 있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마음과 도시의 흔적들이 도처에 있는데 이곳들은 오늘날에는 물의 공급이 전혀 불가능허거나 또한 울창한 수풀로 뒤덮인 상태이다. 현재 통행이 불가능한 사막 한복판으로 도로가 가로질러 나 있거나 또는 사막을 달리던 도로가 밀림 입구에서 끝나기도 한다.
마야 문명.
기후 변화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마야문명이다. 마야문명은 서기 400년경에서 1500년경 사이에 과테말라, 온두라스, 그리고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일대에서 번성했다. 그들의 업적으로는 종이 제조, 태양력의 완성, 음문자 체계의 발전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대도시들이 건설되었으며, 천문학에서도 현저한 발전이 이루어졌고, 조각과 건축도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오늘날 마야문명은 대부분 폐허로 변했다. 부족간의 처절한 전쟁등 멸망을 초래한 여러 요인들을 들 수 있겠지만 그 요인들 중에는 아마 기후의 변화도 포함될 것이다. 오늘날 마야의거대한 도시 유적들 대부분은 밀림으로 에워싸여있다. 밀림에는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있으며 농사는 짓기가 힘들다. 당시에도 기후 조건이 오늘날과 같았다면 그러한 돼 조건 아래에서는 마야 문명이든 또는 어떤 다른 문명이든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토양 고갈 이론
기후 이론과 관련된것으로 토양 고갈은 이론이 있다. 현대의 환경 보호론자들은 과거의 대제국들이 쇠망한 일차적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기껏해야 부분적인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문명의 탄생이나 성장에 대해 아무런 이론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론의 옹호자들은 인간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환경만 쓰면 우수한 문화가 번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의 거대한 사막과 황무지는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부적절한 목축과 농업관행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초래된 것이다. 생태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 그리스, 이탈리아, 중국, 멕시코 등지에서 황폐화를 초래한 수많은 자연 파괴와 부주의의 증거들을 발견한다. 한때 이들 지역에서 번성했던 강대한 문명들은 그 지역의 토양이 충분한 식량을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게 되자 마침내 파멸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 결과 좀 더 지적이고 진취적인 시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했고 머물러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정체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머물러 있던 사람들에게 닥친 운명은 그들 자신만의 책임은 아니었다. 온 놀라가 삼림을 수탈하고 토양을 고갈시키고 풀뿌리까지 다 먹어치우도록 가축들을 방목한 죄를 범했던 것이다.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닥치는 비극이 초래되었다. 비나 눈으로 불어난 물을 조절할 숲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구릉 지대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작물의 밑동을 짧게 베어내거나 과도하게 경작한 경우 이 지역의 표토는 바람에 날려 가거나 물에 씻겨 강으로 흘러들어 가 결국 바다로 갔다. 그로 인한 손당은 회복 불가능한 것이었다. 자연 상태에서 1인치 정도의 표토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약 300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아널드 토인비의 역경 이론
문명의 기원에 대한 최근의 가설로서 영국 역사가 토인비의 역경 이론을 들 수 있다. 이 이론에 의하면 곤경이나 역경이야말로 우수한 문화를 산출하는 진정한 원인이다. 그러한 상황은 도전으로 이어져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극복하도록 자극을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업적을 이룩할 힘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이다. 이 도전은 사막, 밀림, 거친 지형, 메마른 토양등의 형태를취는다. 히브리인과 아랍인은 사막의 도전을, 그리고 안데스산맥의 인디언들은 메마른 토양의 도전을 받았다. 그러한 도전은 전쟁에서의 패배나 노예 신세로의 전락과 같은 형태를 띨 수도 있다. 따라서 카르타고인들은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하고 난 뒤 이에 자극받아 에스파냐에 새로운 제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전이 크면 클수록 성과도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는 계는 있다. 도전이 너무 가혹할 경우에 그 도전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비슷한 조건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서는 하나가 아닌 두개의 강, 즈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이 이집트의 나일강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메소포타미아란 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강들 사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그 지역이 나란히 흐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사이에 위치했음을 말해 준다. 그 지역은 토양이 매우 비옥했고 두 강 사이의 거리는 대개 20마일이 채 못 되었다. 주변 지역이 사막이었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지나치게 넓은 영토에서 산만하게 흩어져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 결과 주민들은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상의 교류를 용이하게 하는 조건 가운데 서서 하나의 밀착된 사회를 형성했다. 인구가 증가하자 사회 통제를 위한 기관들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것이 정부, 학교, 법전과 도덕률, 그리고 부의 생산과 분배를 위한 제도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생활 조건도 매우 복잡해지고 인위적인 것이 되었으며, 행해진 인들을 기록하고 새로운 기술을 완성시킬 필요가 생겼다. 그 결과 문자가 발명되고, 금속이 제련되었으며, 수학적 계산이 행해졌고, 천문학과 초보적인 물리학이 발전되었다. 이러한 업적들과 더불어 그들은 문명사의 첫 번째 위대한 관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이집트에서의 기후의 이점
기후의 영향도 이 두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집트의 대기는 건조하면서도 상쾌하다. 가장 더운 날에도 이집트 보다 북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여름이면 종종 겪는 숨 막힐 듯한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 나일 삼각주 지역의 겨울 평균 기온은 대략 섭씨 13 지도선에서 오르내리고, 계곡 상류 지역에도 대략 19도 정도이다. 여름 평균 기온도 28도 정도 극히 낮다. 삼각주 지역을 제외하면 비는 거의 오지 않지만 물의 부족은 매년 7월에서 10월 사이에 발생하는 나일 강의 홍수가 해결해 준다. 역사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상나일지역에 말라리아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말라리아는 해안 지역에서도 사실상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바람의 방향 역시 유리하게 작용했다. 일 년 중 3/4 이상의 기간에 바람은 북쪽으로부터 나일강의 흐름과 반대방향으로 불었다. 그 결과 운송가 매우 쉽게 해결되었다. 강물의 흐름과 반대로 부는 바람의 추진력에 힘입어 상류로의 운송은 하류로의 운송에 비해 별로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고대의 이러한 환경은 이집트인으로 하여금 나일 강 물줄기를 이용한 교류를 촉진하는데 커다란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메소타미아에서의 기후 영향
메소포타미아의 기구 조건은 이집트만큼은 유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름에는 무척 덥고, 습도도 다소 높은 데다가 열대성 질병 또한 만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타는 듯한 바람은 비록 사람의 기력을 빼앗아가긴 하지만 대추야자가 열매를 맺는 계절에 때맞춰 불어준다. 무엇보다도 근동 지방의 식용 작물인 대추야자열매가 풍성하게 수확된 까닭에 수많은 사람이 이 두 강의 계곡에 정착했다. 더욱이 북부 산악 지역의 눈 녹은 물은 이집트에서와 비슷하게 바빌로니아 평원에 매년 홍수를 가져다주었다. 그 결과 토양은 물기를 머금게 되었고 대단히 비옥한 진흙층이 그 위를 덮게 되었다. 아울러 유념할 것은 메소포타미아의 물사정이 이집트보다는 불안정했다는 사실이다. 홍수는 때로 커다란 재앙을 가져다주었으며 그것은 문화의 발전에 흔적을 남겨주는 한 요인이기도 했다.
부족한 강우량
그러나 지리적 영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강우량의 부족이 두 지역에서 창의력과 발명 기술을 자극했다는 사실이다. 주기적인 강의범람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수확을 거두기에는 토양의 수분이 충분치 못했다. 홍수가 물러간 지 몇 주일 뒤에는 땅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므로 비옥한 토양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관개가 필수적이었다. 그로부터 5천 년 전에 이미 구축되었다. 이러한 계획들을 진전시키기 위해필요했던 수학적 기술, 공학적 능력, 사회적 협동 등은 다른 목적에도 활용되었을 뿐 아니라 문명을 이룩하는데도 기여했다.
어느 문명이 더 오래되었는가는 불확실하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이 두 문명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오래되었는가? 최근까지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이집트 문명이 더 오래되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양차 대전 사이의 기간에 세 소 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이 이미 기원전 3500년에 나일 계곡에 미쳤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발굴되었다. 메소포타미아가 이집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원통형 도장의 사용, 건축 방법, 예술의 주제,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되었음이 분명한 문자 체계등으로 입증되었다. 그러한 업적들이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계곡에서 이집트로 그토록 이른 시기에 전파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지극히 오래된 것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 사실은 반드시 메소포타미아가 이집트 보다 더 오래되었음을 증명해주지는 않아서 언급된 이집트인의 업적이 독창성 없이 전수되고 복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집트인은 자신들의 문화에 맞게 그것들을 급격하게 수정했다. 이러한 증거에 입각해 볼 때 별 무리 없이 도출할 수 있는 한 가지 확실한 결론은 두 문명이 모두 매우 오래되었다는 점과 또 두 문명이 거의 동시에 발달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두 문명과 더불어 서양 문명의 역사를 풀어나가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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