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회의 주요 계급
이집트 역사의 상당 기간에 걸쳐 인민은 다섯 계급으로 나뉘었다. 즉 왕족, 사제, 귀족, 서기, 상인, 장인, 부농등의 중간 계급, 그리고 인구의 대다수를 점했던 농민으로 구분되었다. 신왕국 시대에는 직업 군인들이 여섯 번째 계급으로 추가되었고, 이들은 귀족의 바로 다음 서열을 차지했다. 또 이 시기에는 수천 명의 노예들이 포획되어 왔기에 이들이 한동안 일곱 번째 계급을 형성했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멸시당했으며 정부가 운영하는 채석장이나 신전의 영지에서 강제 노동에 종사했다. 그러나 차츰 노예들에게 군대 복무가 허용되었고, 심지어 파라오를 위해 개인적인 봉사를 하는 것도 허용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노예 계급이라는 별개의 계급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집트 사회의 여러 계급의 지위는 수시로 변했다. 고왕국 시대에는 귀족과 사제들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러다가 중왕국 시대에 들어와서는 평민 계급의 목소리가 높아져 상인, 장인, 농뷰들이 정부로부터 특권을 얻어냈다. 특기할 만한 일은 이 시기에 상인과 장인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제국의 확립과 더불어 정부 기능이 확대되었고 그 결과 새로운 귀족 계급이 등장하여 관직을 대부분 차지했다. 또한 주술과 의식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사제들 역시 더 큰 권력을 행사했다.
빈부의 차이
이집트인의 상류 계급과 하층 계급 간의 생활 수준의 격차는 아마도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서의 차이 보다 한층 더 컸을 것이다. 부유한 귀족들은 사치 스던 정원과 그늘진 숲이 딸린 호화 주택에 거주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고기, 조류, 케이크, 과일, 포도주, 과자 등의 음식을 즐겼다. 그들은 설화석고와 금, 은으로 된 식기를 사용했고, 값비싼 옷감과 보석으로 치장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빈민들의 생활은 참으로 비참했다. 도시의 노동자들은 흙벽돌로 지은 오두막에서 북적거리며 살았다. 그들의 오두막에는 가구라고 해야 의자, 상자, 그리고 조잡한 항아리 몇 개가 고작이었다. 대영지에 속한 농민들은 비교적 덜 붐 미는 환경에서 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보다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이집트의 여성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고는 있었지만, 이집트의 표준적인 기본 사회 단위는 일부일처제의 가족이었다. 후궁이나 첩을 거느릴 수 있었던 파라오에게도 본부인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축첩 행위는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대 사회와 비교개 볼 때, 이집트의 여성들이 남성에게 전적으로 예속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내들은 격리되어있지 않았다. 여성들은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거나 상속받을 수 있었고, 사업에 참여할 수도 있었다. 고대인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집트인만이 여성의 왕위 계승을 허용했다. 제12왕조의 소베크노프루 여왕과 제18왕조의 핫쉐프수트 여왕이 그 단적인 사례였다.
농업, 상업, 공업
이집트의 경제는 주로 농업에 의존했다. 농업은 분업화되었고 고도로 발달되었으며, 밀, 보리, 수수, 야채, 과일, 아마, 면화등이 풍성하게 수확되었다. 이론상 전국토가 파라오의 소유였지만 파라오는 일찍이 대부분의 토지를 그의 신민들에게 수여했으면서 실제로 땅을 소유한 것은 인민 개개인이었다. 상업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견실하게 발전하여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크레타 섬, 페니키아,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과의 교역이 번창했다. 이집트가 장악했던 리비아의 금광은 중요한 부의 원천이었다. 주요 수출품은 금, 밀, 아마포등이었고, 수입은 주로 은, 상아, 목재 등에 국한되었다. 상업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은 제조업이다. 기원전 3000년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은 수공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 후 공장들이 세워졌는데 한 공장에 20명 남집한 사람들이 되고 용 되었으며, 어느 정도 분업도 이루어졌다. 주요 공업으로는 채석, 선박 건조, 그리고 도자기, 유리, 섬유의 제조가 있었다.
경영 수법의 발전
이집트인은 일찍이 경영 수법면에서도 탁월한 진보를 이룩했다. 그들은 초보적인 회계와 부기를 할 줄 알았다. 이집트 상인은 상품의 주문서와 영수증을 발행했다. 그들은 소유권 증서 및 계약 문서, 유언장등을 창안했다. 화폐 제도는 아직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미 화폐 경제에 이르러 있었다. 교환 매개물로 통용된 것은 일정한 무게를 지닌 구리 반지 또는 금 반지였다. 이 이집트의 반지 화폐는 분명 역사상 가장 오래된 화폐였다. 아마도 그것은 큰 거래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농민과 가난한 도시들은 물론 물물 교환을 했다.
경제 집단주의
이집트의 경제 체계는 항상 집단적이었다. 초창기부터 인민의 에너지는 사회화된 통로로 끌어들여졌다. 개인의 이해 관계와 사회의 이해관계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국가 전체의 생산활동은 대규모 국가사업을 위주로 행해졌고, 정부는 최대의 고용주였다. 그러나 집단주의 경제 6 전부는 아니었다. 상당한 영역에서 사적인 경제 활동이 행해졌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사업체를 운영했고, 상당수의 장인들도 자신들의 점포를 소유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농민들이 자영농의 지위를 얻었다. 정부는 계속해서 채석장과 광산을 운영했으며 피라미드와 신전을 건설했고, 왕령 지를 경작했다.
신왕국하에서의 극단적인 국가통제
신왕국의 건설과 더불어 경제에 대한 극단적인 국가 통제가 행해졌다. 군사적 절대주의의 성장과 정복 전쟁의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세입의 필요성과 무제한적인 상품 생산의 필요성이 등장했다.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정부는 경제 생활에 대한 통제를 확대했다. 거대한 신전 건립을 위해 또는 군수 물자의 제조를 위해 장인들이 징집되었고 대외 무역은 국가의 독점 사업이 되었다. 신왕국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면서 정부는 인민의 경제활동을 더 많이 흡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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