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원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계곡에서 시작한 또 하나의 고대 문명은 늦어도 기원전 3500년에는 출발했다. 이 문명은 과거에는 바빌로니아, 혹은 바빌로니아-아시리아 문명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 문명은 지금은 바빌로니아인이나 아시리아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수메르인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문명 전체를 포괄하는 지리적 용어인 메소포타미아를 사용하는 편이 더 적절한 듯싶다.
이집트 문명과의 비교
메소포타미아 문영은 여러 모로 이집트 문명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은 나일 강과는 달리 불규칙적으로 범람했고 때로는 참혹한 재앙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인은 이집트인과 달리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메소포타미아인은 이집트처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자연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었다. 따라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지역의 생활은 전반적으로 한층 투쟁적이었다. 이와 같은 환경적 요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정치사와 문화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정치사는 이집트보다 훨씬 심한 단절로 점철되었다. 어떤 한 민족의 지배는 다른 민족의 지배로 이어졌던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문화 역시 이집트인보다 더 호전적이고 암울하고 비관주의적이었다. 더욱이 이집트인이 인간의 불멸을 믿고 내세를 준비하는데 많은 힘을 쏟았던데 반해서는 거의 희망을 갖지 않았다. 나아가 메소포타미아인은 이집트인처럼 유일신교를 발전시키지도 않았고 그들의 신에 대해서도 사랑보다는 두려움으로 대했다. 끝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예술은 이집트인의 예술 보다 한층 격렬하고 비인격적인 것이었다.
두 문명의 유사성
그러나 두 문명 사이에는 중요한 유사점도 있었다. 두 문명은 윤리 이론과 사회 정의 개념에서 진보를 이룩했다. 또한 두 문명은 모두 노예제와 제국주의, 그리고 억압적인 왕과 사제 등의 나쁜 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또 두 문명은 모두 관개와 국경 문제라는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과학, 특히 수학에서 놀라운 진보를 이룩했다. 끝으로 군소국가들 사이의 대립과 경쟁은 궁극적으로 세력의 결속과 강력한 제국의 성장을 초래했고 이는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경우에 더욱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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