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개척자는 기원전 3500년경에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계곡 하류에 정착했던 수메르인이었다. 그들의 정확한 발원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앙아시아의 고원 지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문화는 인도의 초기 문명과 어느 정도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언어는 오늘날까지 알려진 그 어떤 언어와도 연관이 없었다. 그들은 평화적인 상호 교류를 거쳐 당시 계곡 하류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이끌기 시작했는데 이들 원주민은 이미 신석기 문화의 단계를 훨씬 넘어선 불가사의한 사람들이었다. 기원전 2800년경에서 2340년경에 이르기까지 수메르인이 건설한 수많은 독립적인 도시 국가들이 메소포타미아 하류 지역에서 번성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도시 국가는 우르와 라가시였다. 그러나 수메르인의 지배는 북방으로 아카드의 사르곤이 강력한 군대를 동원하여 대대적인 침략을 감행함으로써 중단되고 말았다. 아카드인은 대한 민족 집단이다. (오늘날 대표적인 셈족은 아랍인과 유대인이다.) 사르곤의 영도하에 아카드인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최초의 광범위한 군사 제곡을 확립했으나 이 제국은 기원전 2200년경에 쇠퇴했고 그 후 도시 국가 우르에 의해 수 메드인 이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
구바빌로니아의 흥망
수메르인의 부흥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원전 2000년경에 셈족의 또 다른 부족인 아모리인이 서쪽으로부터 진출하여 수아모리인은 바빌론을 제국의 수도로 정했기 때문에 훨씬 뒤에 티그리으-유프라테스 계곡을 점령한 신바빌로니아인 또는 칼데아인과 혼동하지 않고 구별하기 위해 그들을 바빌로니아인 또는 구바빌로니아인이라고 부른다. 구바빌로니아의 흥기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수메르 문명 이후 두 번째 중요한 단계였다. 수메르 문화는 대부분 살아남았지만 수메르인의 지배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 바빌로니아인은 독재 국가를 건설했다. 그리고 저 유명한 함무라비왕의 치세 동안에 북쪽으로 아시리아에 이르기까지 지배권을 확대했다. 그러나 함무라비 이후 구바빌로니아 제국은 점차 쇠퇴하여 기원전 1550년경에 카시트인에 의해 멸망당했다.
카시트인과 아시리아인
구바빌로니아 제국의붕괴와 더불어 퇴보의 시대가 6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는데, 이는 카시트인이 앞선 시대 사람들이 이룩한 문화적 성취에는 관심이 없는 야만족이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기원전 3000년에 또 다른 셈족이 티그리스 강 상류 약 500마일 지점에 위치한 아수르고원에 작은 왕국을 건설하여 옛 문화를 부분적으로나마 수용하지 않았더라면, 그 문화는 아마 지구상에서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들이 바로 아시리아인이었고 그들의 패권 장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달의 세 번째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기원전 1300년경부터 팽창을 시작하더니 이후 곧 북부 계곡 전체를 장악했다. 10세기에 그들은 바빌로니아에 있던 카시트 세력을 전복했다. 그들의 제국은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에 사르곤 2세와 시나케립치하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들은 티그리으 강가에 거대한 신도니 니네베를 건설했다. 아시리아 제국은 이제 근동 지방 거의 전부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들은 시리아, 페니키아, 이스라엘 왕국, 이집트 등을 차례로 정복해 나갔던 것이다.
칼데아의 흥기
아시리아인의 성공은 찬란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새로운 영토들이 너무나 빨리 병합되어서 제국은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아시리아인의 정부 관리 능력은 그들의 정복 능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정복당한 나라들은 그들에게 가해진 전제주의에 대해 분노했으며 제국이 내부로부터 분열될 조짐을 보이자 자유를 되찾기로 결심했다. 제국에 치명타를 가한 사람들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의 남동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던 셈족 계통의 칼데아인이었다. 속주 총독의 자격으로 아시리아 황제를 섬겼던 나보폴라싸르의 영도하에 칼데아인은 반란을 조직화했고, 마침내 그들은 기원전 612년에 니네베를 함락했다. 칼데아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네부카드네자르였는데,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수도 바빌론을 근동의 대표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칼데아의 붕괴
칼데아 제국은불과 100년도 존속하지 못하고 기원전 539년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것은 페르시아의 키루스가 천명한 대로 단 한 차례의 전투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페르시아에 의해 타도되었다. 페르시아의 이 같은 손쉬운 승리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던 유대인의 도움, 그리고 칼데아 왕의 정책에 반감을 품었던 바빌론의 사제들이 칼데아 왕에게 보복하기 위해 그 도시를 키루스에게 넘겨주고자 음모를 획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향력 있는 다른 계급들도 역시 페르시아인을 자신들의 구원자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페르시아인
페르시아는 과거 한때 메소포타미아 제국들이 장악했던 모든 영토를 통합했고, 그 밖에 다른 많은 지역들도 정복해 나갔다. 더욱이 페르시아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를 전달해 주는 매개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칼데아의 붕괴는 메소포타미아 정치사의 종말을 고하는 것으로 간주되 어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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