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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구바빌로니아의 발전

by 윤재주 202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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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바빌로니아의 수메르인

구바빌로내인의 수메르인과 다른 계통의 민족이었지만, 그들은 수메르인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면서 그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구바로니아인이 계곡에 정착했을 때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문화라고 할만한 것은 거의 없었고, 대개 수메르인이 이미 발전시켜 놓은 것을 받아들여 손질하는 정도에 그쳤다. 따라서 구바빌로니아 시대에 나타난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적 변화는 본질적으로 수메르 문화의 변형에 불과했다. 

구바빌로니아인의 법률

구바빌로니아인이 슈메르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 변화를 가한 것으로서 정치와 법률을 먼저 들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피정복민을 신민으로 거느린 군사적 정복자로서 구바빌로니아인은 통합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지방 분권적인 구제도의 흔적은 일소되었고 바빌론 왕의 권력이 최고의 것이 되었다. 왕은 신이거나 또는 적어도 신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고 주장되었다. 강제적인 군복무와 더불어 왕에 의한 징세제도가 채택되었다. 새로운 중앙 집권적 전제주의에 부응하기 위해 법률체계 역시 바뀌었다. 반국가적 범죄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왕의 관리들은 범죄자의 체포와 처벌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았다. 아직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의 동의 없이 죄인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처벌은 더욱 가혹해졌고, 이는 특히 반역이나 폭동의 경우에는 더 심했다. 부랑자 나 선술집에서의 무질서한 행동 같은 경미한 범죄도 사형에 처해졌는데 아마도 이는 그러한 범죄가 반역적인 행동을 낳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수메르인의 법률은 도망 노예를 숨겨주는 행위를 거즈 벌금형에 처했을 뿐이지만, 바빌로니아의 법률은 그러한 행위를 사형으로 다스렸다. 수메르인의 법률에 의하면 노예에 대한 주인의 권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노예는 팔아버려야 했다. 그러나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면 그러한 노예는 귀를 잘라 버려야 했다. 간통 역시 수메르인의 법률에서는 이혼 사유에도 해당되지 않았으나,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사형에 처해지는 범죄가 되었다. 새로운 법률제도는 몇몇세부적인 면에서 얼마간 개선되었다. 채무로 인해 팔려간 여자와 어린애는 4년 이상 노예 상태에 놓여서는 안 되었고 주인의 아이를 낳은 여자 노예는 결코 팔아버릴 수 없었다. 

기업의 발달

한편 구바빌로니아의 법률은 앞선 문화보다 구바빌로니아가 기업 발달면에서 한층 폭 넓은 발전을 이룩했음을 보여준다. 유력한 상인 계급이 이윤을 위해 거래하고 그 사회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함무라비 법전의 상업에 관한 조항이 구매자는 유의하도록 하라는 원칙에 입각해 있었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의 통치자들은 자유경쟁체제를 신봉하지는 않았다. 상공업은 국가에 의해 정교하게 규제되었다. 동업 보관 대리인에 관해 규정한 법률이 있었으며 각종 증서와 유언장 그리고 이자 취득 등에 관한 법률도 있었다. 계약 문서나 증인이 없이 이루어진 거래는 사형으로 다려질 수도 있었다. 대다수 시민들의 생업이었던 농업도 규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법전은 밭의 경작에 실패하거나 둑과 운하의 관리를 소홀히 한 경우에 대해서도 처벌을 규정했다. 토지의 정부 소유와 사적 소유는 모두가능했다. 그러나 토지 소유자의 지위를 막론하고 소작농은 생산량의 2/3를 제대로 납부해야 했다. 

 

구바빌로니아인의 종교

구바빌로니아인의 종교는 피상적인 변화만을 겪었을 뿐이다. 수메르인의 신들은 무시되었고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신들이 들어섰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신 마르둑이 메소포타미의 신들 중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르둑과 그 밖의 다른 신들은 영적인 중요성을 갖지 않았고 죽음에서의 부활이나 영생에 대한 약속도 없었다. 구바빌로니아인은 수메르인과 마찬가지로 현세 지향적이었다. 두 민족의 종교는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적이었던 것이다. 

 

구바빌로니아인의 문학

구바빌로니아인은 예술적인 업적면에서는 수메르인에 비해 약간의 퇴조를 보였으나 문학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수메르인에 의해 발전된 전설과 신화를 토대로 해서 바빌로니아인은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서사시 중의 하나인 길가메시를 저술했다. 규모와 힘에서 그리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에 필적하는 이 장편 서사시는 수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온 여러 이야기들을 편집한 것이다. 이 서사시의 영웅인 길가메시는 숱한 모험을 치른 메소포타미아의 왕이었다. 그중 한 이야기에서 그는 신들이 홍수로 세계를 파멸시키려고 했을 때 살아남은 한 노인과 그의 아내로부터 불사의 비밀을 알아내려 한다. 이 이야기의 많은 요소들은 놀랍게도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이야기와 비슷한데 그 가운데는 그 부부가 방주를 타고 홍수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바빌로니아의 영웅 길가메시는 노부부로부터 체념만을 배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자들만을 배울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자들만 보호하며 인간은 신의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다. 길가메시는 노부부로부터 젊음을 되찾게 해 준다는 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후 그는 천신만고 끝에 바다 밑에서 그것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가 잠든 사이에 그만 뱀이 와서 그것을 먹어버린다. 이 서사시에 따르면 뱀이 해마다 허물을 벗고 새 생명을 얻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드디어 자신이 노쇠와 죽음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사시는 체념 가운데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남긴다. 신들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그들은 인간의 몫으로 죽음을 주었으며 생명은 자신들이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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